록펠러(Rockefeller, John Davison)
록펠러(Rockefeller, John Davison)
미국의 석유 왕 또는 석유재벌이라 불리는 록펠러도 젊은 청년시절 생활이 여의치 못해 근심과 걱정으로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록펠러는 애덤스미드가 쓴 유명한 「국부론」을 읽으려다가 주위에 읽어본 사람이 없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생각을 바꾸어 비록 유명하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읽혀지고 팔리고 있는 성경을 읽으면 혹시 그곳에서 무엇인가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하여 성경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어 내려가는 중에 우리가 「십계」라는 영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어린 모세가 바구니에 담겨져 나일 강 하류를 따라 떠내려가 이집트 공주의 품안에 안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 시대에 바구니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방수로 처리한 재료가 유전지대에서 발견되는 ‘콜타르’ 성분이라는 데에 영감을 얻어 록펠러는 이지대 주변일대에 석유 탐사 권을 얻게 되면서 일약 석유재벌이 되는데 일조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또한 주식시장이 활황일 때 어느 날 구두를 닦으려고 길거리에 나섰다가 구두를 닦는 사람마저도 주식을 사기위해 자리를 비운 것을 알게 되자. 록펠러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주식을 팔아치워 주식폭락의 비참한 결과를 피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록펠러의 말
“절실함이 더욱 애절할수록 성공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지금 현 상황이 절실한 사람이면 어쩌면 앞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록펠러도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친구와 함께 상사회사를 설립하고, 그저 부업으로 클리블랜드에 정유소를 설립한 것이 의외로 번창하면서 오하이오 스탠더드석유회사로 발전한다.
록펠러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사업은 더욱 급속도로 성장을 지속해 미국 내 정유소의 95퍼센트를 지배하는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를 조직하였고, 석유업계의 지배를 계속하여 미국 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유전과 정유소를 소유한 거대한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록펠러는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재계에서 물러나 자선사업과 교육에 몰두하면서 노벨상을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한 세계명문 시카고대학도 당시 그가 수억 달러를 기부하면서 록펠러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 준 기업가가 되었다.
그의 어머니를 통해서 신앙적인 영향력을 가장 많이 받았던 록펠러는 자신의 수많은 재산을 미래를 꿈꾸는 젊은 대학생들에게 투자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록펠러재단·일반교육재단·록펠러의학연구소 등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가면 지금도 록펠러 센터가 있는데, 인류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이 재단은 카네기재단, 포드재단과 더불어 미국 최대 규모로 손꼽힌다. 설립 이후 무려 20억 달러 상당의 자금을 전 세계 수천 명의 수혜자에게 제공하였으며, 1만3천여 명에 가까운 록펠러재단 특별연구원에게 보조금을 지급했고 이들 연구원은 그들의 활동을 통해 록펠러재단을 빛내고 있다.
재단이 내걸고 있는 주요한 과제는 기아근절, 인구문제, 대학의 발전, 미국 국내의 기회균등 및 문화적 발전이다. 최근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 신흥국에 대한 원조를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