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중에 당(唐)이라는 이가 있어 고을 원님의 아전을 살고 있었는데 그 원님의 딸과 혼인을 맺어 그들 사이에서 대대로 재주 있고 덕망 높은 자손들이 번창하니 한음 이덕형 선생을 비롯하여 광주 이씨의 주류를 이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분의 후손들이다.
이당(李唐)이 주인인 원님의 딸과 혼사를 맺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고려 말에 광주고을의 한 원님이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누런 용 한 마리가 자기 집 뜰에 있는 나무에 걸터앉아 있었다. 꿈을 깬 원님이 이상히 여겨 뜰에 나가 나무 위를 올려보니 자기의 아전인 당(唐)이 나무 가지에 다리를 걸치고 잠을 자고 있었다. 평소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고 있던 터라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원님은 벙어리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심하였다.
다섯 아들 중 둘째가 유명한 둔촌(遁村) 이집(李集) 선생으로 고려 말 정몽주 등과 함께 높은 학문으로 이름을 날렸고 그의 집이 있던 고을은 그의 이름을 따서 오늘날 서울의 둔촌동이 되었다. 둔촌동에는 지금까지도 그가 살던 유적지와 그와 관련된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광주이씨(廣州李氏)의 조상 중에서 오늘날 기록이 확실히 남아있는 수많은 명현재상(名賢宰相)의 선조(先祖)이신 둔촌(遁村) 이집(李集)선생 이므로 대부분의 광주이씨 들은 이당(李唐)을 시조로 하고 둔촌을 광주이씨의 제1대 선조로 기록하고 있다.
광주이씨(廣州李氏)와 영천최씨(永川崔氏)의 후손들 간에는 그들의 조상인 이집(李集)과 최원도(崔元道) 사이의 우의를 상고하면서 양가가 같은 날 묘제를 지내며 서로 상대방의 조상 묘에 잔을 올리고 참배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 망하려면 혼자 망할 것이지 어찌하여 우리 집안까지 망치려 하는가. 친구에게 복을 전해주지는 못할망정 화를 전하려 이곳까지 왔단 말인가? "
사사태가 이렇게 되자 이집은 매우 난처해하며 몸을 의탁하러 온 것은 아니니 먹을 것이나 좀 달라고 부탁해 보았으나 최원도의 태도는 더욱 격노하면서 이집 부자를 동네 밖으로 내몰게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최원도는 이집 부자가 잠시 앉았다 떠난 문간방을 역적이 앉았던 곳이라 하여 여러 사람이 보는데서 불태워 버렸다.
한편 이집은 최원도에게 쫓겨나 정처 없이 떠나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최원도의 태도가 조금씩 이해되면서 그의 진심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한밤중에 다시 최원도의 집 부근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르게 가만히 숨어들어 길옆 짚 덤불에 몸을 숨기고 하루 밤을 쉬고 있었다.
최원도 또한 이집이 자기를 이해해 줄 것이라 믿고 동네사람들 모르게 꼭 다시 찾아오리라고 생각하면서 날이 어둡자 혼자서 집 주위를 뒤져보다가 두 친구는 반갑게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이집 선생은 최원도의 집 다락방에서 이후 4년 동안을 보내게 되었는데 오로지 최원도 혼자만 알고 가족에게도 비밀로 하자니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우선 밥을 고봉으로 눌러 담고 반찬의 양을 늘려도 주인 혼자서 다 먹어 치우는 것이 시중드는 몸종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느껴졌다. 여러 달을 의아하게 생각하던 몸종이 하도 궁금하여 하루는 주인이 그 음식을 다 먹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고 문틈으로 엿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 둘과 함께 세 명이 식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몸종은 최원도의 부인에게 고하였고 부인은 남편에게 어찌된 연고인가를 묻게 되었다.
경상도 영천에 지금도 있는 광주이씨 시조 이당(李唐)의 묘가 바로 그것이다. 다락방 생활 4년만에 중 신돈이 척살 당하고 세상이 변하게 되어 나라에서 이집과 최원도를 중용 하려고 여러 번 불렀으나 이들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조용히 여생을 마치었다.
세상을 탄식하는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고향 떠나서 아버지께 드린 효성 지하에까지 미치네.
한양은 멀고 먼 곳, 구름 연기만 자욱한데
나현(이당과 최씨어머니가 묻힌 고개이름)위에 올라보니 수풀만 우거졌네.
앞뒤로 두 개의 봉분을 나란히 세웠으니
그대와 나의마음 누군들 알겠는가.
원하건데 대대로 지금같이 지내면서
서로의 이해를 떠나 깊은 정 변함없기를.
출처 : 광주이씨대종회(http://www.gwangle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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